메타버스와 디지털 현실

메타버스(Metaverse)를 둘러싼 논쟁 중 하나는 그것이 현실을 초월한 가상 세계인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세계인지에 대한 정의 문제다. 『메타버스』 시리즈의 저자이자 인지과학자인 김상균 교수는 이를 디지털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 메타버스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물리적 현실과 마찬가지로 실존하는 또 다른 현실이며, 따라서 물리적 세계와 똑같이 좋은 사례와 나쁜 사례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등장해 200년간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다면, 메타버스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향후 10년 안에 공간·조직·인간관계·산업 전반을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메타버스가 사람을 끌어모으는 원동력은 시각적 화려함이나 물리적 실재감이 아니라 스토리 리빙(Story living), 즉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역할을 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이다. 로블록스 유저가 자체 제작한 '오징어 게임'이 그래픽 수준과 무관하게 수백만 명을 끌어모은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좋은 사례로는 팬덤 상호작용에서 출발해 실제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한 버튜버 그룹 '이세계 아이돌', 메타버스 아바타를 통해 정체성을 인정받은 성 소수자 학생, 이동 제약 없이 창작·전시·판매 활동을 이어간 신체 장애인 예술가 사례가 있다. 반대로 아바타를 이용한 온라인 그루밍과 미성년자 성 착취, 아바타 간 성추행처럼 관리되지 않는 공간의 위험도 함께 나타난다. 아직 메타버스에는 도시나 제도화된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고, 물리적 현실 일부가 이주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런 명암이 뚜렷하다.

산업별 활용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게임·AR 분야에서는 구글 자회사 나이언틱이 '포켓몬 고'의 AR 기술을 개발 플랫폼 '라이트십'으로 확장해 누구나 증강현실 기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부산시가 팬데믹으로 중단된 오프라인 백일장을 메타버스 속 용두산 공원으로 옮기면서, 소수 수상자 중심이 아닌 '좋아요'와 댓글을 주고받는 참여형 경험으로 아이들의 만족도를 오히려 높인 사례가 있다. 식음료 분야에서는 버드와이저 제조사가 메타버스 경마장을 만들어 저비용으로 브랜드 체험을 확장하는 등, 미각을 넘어선 입체적 경험 설계 가능성이 언급된다.

메타버스 플랫폼과 세계관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도 제시된다. 첫째, 필요하다면 빌런도 설계 요소로 만들어야 한다. 빌런은 사용자를 각성시키는 자극제이자 집단을 결속시키는 목표 의식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므로 스토리 기반 몰입, 경쟁 기반 몰입, 지식·발견 기반 몰입 등 다양한 몰입 요소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VR 장시간 이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이인증(DPDR)이나 온라인 성범죄·탈세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비하는 설계가 사용자 보호뿐 아니라 기업의 평판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디지털 전환기의 UX 컨설턴트 관점에서는 메타버스를 멀티버스(Multiverse)와 짝지어 구분해보는 시각도 있다. 이 구분에서 메타버스는 사용자가 가상의 나를 만들어 소통하고 개성을 드러내는 가상 커뮤니티·플랫폼에 가깝다. 제페토 안에서 구찌 아바타 의상을 입히거나 '구찌 스니커 개러지'에서 가상 신발(The Gucci Virtual 25)을 구매해 신어보게 한 사례처럼, 디지털 공간에서의 경험이 실제 상품 구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멀티버스는 여러 서비스가 하나의 플랫폼 생태계로 묶이면서 서비스마다 흩어져 있던 화폐 단위가 하나로 통합되는 흐름을 가리킨다. 클라우드 산업이 Service(Product)–Platform–Infrastructure로 계층화된 것처럼, 하나의 플랫폼 안에 여러 서비스·프로덕트가 묶이면 서비스 간 이동과 교류가 쉬워진다. 구글이 여러 서비스 혜택을 통합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 Play Pass와 플레이 생태계 내 통합 화폐 Play Points를 함께 내놓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멀티버스는 여러 혜택을 편리하게 누리는 익숙한 생태계이고, 비즈니스 입장에서는 여러 채널로 사용자를 유입시켜 충성도를 쌓고 서비스 간 데이터를 활용해 더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된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1995년 『Being Digital』에서 말한 "Computing is not about computers any more. It is about living"이라는 문장은,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가 되어가는 이런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직접적인 상품 구매 경험을 만들고 싶다면 메타버스적 접근을, 일관된 브랜드 경험과 충성도를 쌓고 싶다면 멀티버스적 접근을 택할 수 있으며, 이렇게 현재의 기술·시장 흐름을 관찰해 다가올 미래를 그려보는 작업은 스페큘러티브 디자인(Speculative Design) 또는 인비저닝(Envisioning)이라 불리며 크게 보면 UX 컨설팅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핵심 내용

  • 디지털 현실: 메타버스는 현실을 대체·초월하는 공간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과 나란히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
  • 스토리 리빙: 메타버스의 매력은 그래픽 완성도가 아니라 사용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 자체
  • 메타버스의 명암: 정체성 인정·창작 기회 확장 같은 순기능과 온라인 그루밍 같은 역기능이 동시에 존재
  • 산업 적용 사례: AR 게임 플랫폼(나이언틱 라이트십), 교육(부산 메타버스 백일장), 식음료(메타버스 경마장)
  • 플랫폼 설계 원칙: 빌런 설계, 다양한 몰입 요소 마련, 사회적 문제(이인증·성범죄 등) 사전 대비
  • 메타버스 vs 멀티버스 구분: 메타버스는 개성을 드러내는 가상 커뮤니티·플랫폼, 멀티버스는 여러 서비스가 하나의 화폐·구독 생태계로 통합되는 흐름
  • 제페토 x 구찌, 구글 Play Points·Play Pass 등은 각각 메타버스적·멀티버스적 접근을 보여주는 사례
  •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1995) —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도구를 넘어 일상 자체가 되는 흐름을 예견
  • 기술·시장의 흐름을 관찰해 미래를 그려보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인비저닝은 넓게 보면 UX 컨설팅의 한 영역

관련 개념

출처

최종 업데이트: 2026-08-03 | 출처 2개